난 4년마다 열리는 지구촌 축제인 “월드컵”이 열리면 항상 기대가 되는 편이다. 축구라는 종목은 매년 매월 매일같이 여러 이슈가 발생하지만 월드컵에서는 매우 흥미롭고 재밌는 이벤트가 발생하기 때문에 월드컵은 다른 어떤 축구 경기보다 꼭 챙겨보고 소식을 듣곤 한다.
특히 대한민국의 경우에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 이후로 4년마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단골손님이다. 최근 월드컵인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무려 9회 연속 월드컵 본선에 진출하였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까지 하면 월드컵에 10회 진출하였다. 이는 아시아 국가에서는 단연 독보적이고 세계적으로도 값진 기록이기도 하다.
필자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부터 최근 2018년 러시아 월드컵까지 한국 대표팀의 경기들을 TV 방송으로 지켜봤는데 매 월드컵 경기들이 감동이긴 하지만 이 중에서 가장 감동적인 월드컵 경기들을 꼽으라고 하면 단연 “2002년 한일월드컵” 일거 같다.
2002년 한일월드컵은 월드컵 자체가 대한민국에서 열린 첫 월드컵이어서 월드컵 경기가 열리기 전부터 이미 국내 축구팬들의 관심이 엄청났던 대회이다. 월드컵이 열리기 전에는 한국은 개최국이라서 본선에 자동 진출이기 때문에 월드컵 예선을 치르지 않아서 많은 평가전을 치렀지만 유럽 강호들과의 사전 평가전에서 5:0이라는 참패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과연 한국이 월드컵 개최국으로서 좋은 성적을 거둘지도 큰 관심사였다.
하지만 보란듯이 한국 대표팀은 2002년 월드컵에서 매우 “핫”한 팀으로 전 세계에 이름을 떨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축구 세계 강호들을 물리치고 무려 4강이라는 경이로운 성적을 낸 것이다. 매 경기가 엄청났고 또한 감동이었으며 대단한 모습을 보여줬다.
직접 경기장에서 관전을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까지 경험해본 월드컵중에서 가장 감동적이고 뜨거웠던 그해 2002년의 월드컵을 한번 돌아보자.
목차
한국 대표팀을 월드컵에서 5:0으로 침몰시킨 “히딩크 감독” 그가 오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조별 예선 한국과 네덜란드 간의 경기. 결과는? 매우 참혹했다. 세계 최강 중에 하나였던 네덜란드에 무려 5:0이라는 스코어로 처참하게 무너진 거였다.
토털사커라는 닉네임답게 네덜란드는 한국 대표팀의 골문을 융단 폭격하기 시작했는데 한국 수비진들은 네덜란드 공격수들의 공격을 막기에 급급했고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도 못한 채 경기를 마쳐야만 했다. 한국 선수들 중에 제일 바빴던 선수는? 골키퍼 김병지 선수였다.
이때 네덜란드 대표팀의 감독이 바로 “거스 히딩크”였다. 위의 캡처 화면처럼 한국 대표팀의 골문에 골을 넣고 나서 윙크를 하는 모습은 우리의 가슴에 비수를 꽂은 거와 같았다. 경기 스코어는 다행히(?)도 5:0으로 끝났는데 골키퍼 김병지 선수의 선방이 아니었다면 7:0 ~ 9:0으로도 끝났을 경기… 이처럼 경기 결과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 출신 “차범근 감독”의 월드컵 도중에 경질이라는 초유의 결과를 낳게 되었다.
그렇게 1998 프랑스 월드컵은 한국 대표팀에게 안좋은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 개최를 앞둔 한국 대표팀에게도 위기가 찾아온 듯했다.
1998년 월드컵 이후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지만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자 축구 협회에서는 2002년 월드컵을 위해 큰 결정을 내린다. 바로 1998년 한국 대표팀을 제대로 침몰시켰던 “거스 히딩크” 감독을 데려온 것이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네덜란드 대표팀을 4위까지 올려논 그 세계적인 감독이 한국 대표팀에 선임되었다는 소식에 많은 사람들이 놀라기도 하고 의아해했다.
그동안 한국 대표팀의 감독은 주로 국내 출신 지도자들이 맡아왔지만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히딩크 감독이 선임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고 전격적이었다. 그만큼 국내 축구계는 꽤 위기감을 느꼈던 모양이다. 2002년 월드컵 개최국인데 잘못하다간 16강도 못 올라가는 망신을 당할까 우려했던 정서가 팽배한 상태였다.
어쨌거나 히딩크 감독의 대표팀 선임은 현실이었고 월드컵을 1년 6개월여 앞두고 그의 감독 선임에 국내 축구팬들은 많은 기대를 한듯 하다.
각 대회와 평가전에서 졸전을 거듭한 히딩크 감독
히딩크 감독이 선임되고 나서 각 대회와 평가전에서 그럭저럭이랑 평가를 받으면 순항하던 도중에 월드컵을 1년여 앞두고 국내에서 컨페더레이션스컵이 열리게 되었다. 이때부터 한국 대표팀의 성적에 우려를 나타내기 시작했다.
첫 경기에서 당시 세계 최강팀이던 프랑스를 상대로 5:0이라는 대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물론 지단이라는 걸출한 스타가 존재하는 프랑스 대표팀의 능력이 출중한 것도 있지만 안방에서 열린 대회에서 5:0이라는 스코어로 패하자 축구팬들을 포함한 전문가들도 서서히 우려를 표하기 시작한다.
그 뒤의 예선 경기에서 멕시코, 호주를 상대를 모두 승리를 해서 잠시 우려를 불식시키나 했는데… 다음 평가전인 체코 대표팀과의 경기에서 또다시 5:0이라는 대패를 당한다. 원정경기이고 유럽 강팀인 체코이긴 하지만 5:0으로 진 게 꽤나 충격적인 패배인 듯하다.
이때부터 히딩크 감독은 오대영 감독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니기 시작한다. 축구팬, 전문가들, 언론에서 엄청난 비난이 쏟아졌지만 히딩크 감독은 전혀 굴하지 않고 묵묵히 대표팀을 이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평가전과 대회에서 나아진 모습을 대표팀이 보여주지 않아 다시금 팬들과 언론, 전문가들의 걱정과 비판이 줄을 이룬다. 월드컵을 불과 몇 개월 앞둔 상황에서 히딩크 감독의 위기였다.
월드컵 직전의 평가전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전
2002년 5월에 들어서 최종 모의고사를 치르게 된 한국 대표팀은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프랑스라는 유럽의 강팀들을 상대로 평가전을 치루게 되었다. 평가전을 치르기 전만 해도 이들 팀들에게 큰 점수차로 지게 되면 사기만 꺾이지 않을까 우려도 되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첫 모의고사 상대인 스코틀랜드를 무려 4대 1이라는 엄청난 스코어로 승리하게 되면서 갑자기 달라진 한국 대표팀의 경기력에 놀라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한국 대표팀의 반전이 시작된다.
세계적인 스타 베컴이 존재하는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 1대 1이라는 스코어로 비긴 것이다. 이때 골은 넣은 선수는 박지성이었는데 이때부터 박지성은 서서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팬들도 점차 한국 대표팀의 선전에 기대를 나타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월드컵 직전 최종 평가전인 프랑스와의 경기. 이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2대 3이라는 스코어로 석패를 했지만 불과 1여 년 전에 컨페드컵에서 5대 0으로 지던 그 한국 대표팀의 모습이 아닌 전혀 다른 팀으로 변모한 것을 실감케 했다.
이때도 프랑스는 여전히 우승후보 0순위였던 팀이었고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인 “지네딘 지단”이 버티고 있던 팀을 상대로 2골이나 넣었던 것. 이때도 역시 박지성과 설기현 선수가 골을 넣었다. 20대 초반의 무명 선수인 박지성의 진가가 서서히 드러나던 경기였다.
엄청났던 2002 월드컵 예선 3경기
평가전에서 꽤 괜찮은 성적으로 선전을 했던 한국 대표팀. 막상 월드컵이 열리자 많은 사람들은 걱정 아닌 걱정을 했다. 그 이유는 조별 예선 경기 상대들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예선을 1위로 통과하고 세계적인 골키퍼 두덱이 소속된 폴란드, 북중미에서 멕시코와 함께 월드컵 단골손님은 미국, 루이스 피구라는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를 보유하고 있는 유럽의 또 다른 강호인 포르투갈. 한국 대표팀이 가장 약체일 정도로 죽음의 조라고 평가할 만한 팀들이었다.
평가전과 실제 월드컵 경기하곤 또 다르지 않는가? 사실 한국 대표팀은 월드컵 전까지만 해도 지역 예선 깡패였고 평가전에서도 늘 좋은 성적을 거둔 팀이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면 1986년 월드컵부터 1998년 월드컵까지 단 1승도 해보지 못한 월드컵에선 약체 팀이다.
또한 워낙 월드컵 본선에서 쟁쟁한 팀들과 붙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많은 우려가 되었던 상황이었다. 첫 경기인 폴란드 또한 유럽 예선을 1위로 통과한 강팀이었기 때문에 한국 대표팀이 잘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되었던 상황이다.
하지만 이를 보란 듯이 무시하듯 한국 대표팀은 첫 경기에 무려 2대 0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며 월드컵에서 역사적인 첫승을 거둔다.
여기 온 국민이 축제 분위기가 되고 한국 대표팀의 엄청난 경기력에 다들 환호하게 된다. 그 전 월드컵까지만 해도 첫 경기에 긴장하고 몸이 굳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 아쉬움이 있었는데 그동안의 그런 아쉬움을 시원하게 떨쳐내 버린 경기였다.
당시에 경기를 TV로 지켜보면서 매 순간순간이 엄청난 긴장감이 들었던 거 같다. 한국 선수들이 잘하지만 골을 실점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면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시 팬들의 기대가 많이 컸기도 한 거 같다.
첫 경기에 축포를 터트리며 환호를 뒤로 하고 북중미 강호 미국과 2차전. 그런데 상대 경기를 지켜보니 충격적 이게도 미국이 포르투갈을 3대 2로 승리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미국이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가진 것을 직감했다.
역시나… 그 예상은 적중했다. 2차전 미국과의 경기에서 쉽지 않은 경기를 펼치더니 선제 실점을 한 것이다. 이후에도 페널티킥을 얻었으나 득점에 실패하고, 황선홍 선수가 머리를 부딪혀 피를 흘리는 등의 경기가 꽤 어렵게 풀려갔다.
전반전을 마치고 후반에는 더욱더 적극적인 공격을 했으나 미국의 골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애타게 시간이 흘러가던 도중… 후반 33분경에 안정환의 헤딩이 미국의 골문을 드디어 열어젖힌다.
골이 성공된 것을 확인한 후 안정환은 코너 쪽으로 달려가 2002년 동계올림픽에서 이슈가 된 오노 동작을 흉내 내는데 이에 동료 선수들이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을 따라 하는 식으로 골 세리머니가 완성된다. 정말 패색이 짙었던 후반 말미에 터진 극적인 골이다.
그 뒤에 몇 차에 역전의 기회가 있었지만 아쉽게 날려버린 한국 대표팀은 1대 1로 경기를 마쳤다. 비긴 게 아쉬운 경기였지만 그 경기의 반전과 재미는 엄청났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아쉽지만 스펙터클한 경기를 펼쳤던 한국 대표팀은 운명의 16강행을 가를 마지막 조별 예선 경기인 포르투갈과 맞붙는다. 포르투갈은 세계적 미드필더 “루이스 피구”가 이끄는 유럽에서도 강호라고 볼 수 있는 팀이다.
하필이면 포르투갈이 첫 경기에서 미국에서 지는 바람에 마지막 한국과의 경기 때 사력을 다할 것이라는 게 예측이 되었다. 포르투갈이 한국에게 지면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도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지면 16강 진출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필사적인 각오로 경기에 임해야 했다. 양팀다 물러설 수 없는 경기임에 틀림없었다.
경기가 시작되고 나서 포르투갈은 거칠게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대로 16강에 진출하기 위해 포르투갈도 사력을 다하는 듯했다. 경기 초반이지만 몇 번의 실점 위기를 넘기기 시작했다. 지켜보는 관중들과 TV로 시청하는 팬들도 초초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경기가 팽팽하던 도중에 박지성 선수에게 심한 태클을 건 포르투갈 선수가 퇴장을 당했다. 한국의 절호의 기회였다. 그러고 나서 서서히 경기 분위기가 한국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전반전의 기회를 살리지 못한 채 후반전으로 넘어갔다.
포르투갈은 한 명이 퇴장당했지만 열세의 경기를 펼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후반 66분경에 경고 누적으로 포르투갈 수비수 1명이 퇴장을 당하는 천운이 따른다. 이제 완전히 분위기가 한국으로 기우던 참에…
월드컵 전 최종 평가전에서 2골을 넣은 박지성이 한 명을 제치고 기가 막히게 슛을 한 게 골키퍼 다리 사이로 들어가서 골! 이 된 것이다.
정말 멋있는 골이었다. 그리고 골을 넣은 후 박지성 선수가 히딩크 감독에서 달려가서 안긴 장면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역사 중에서도 명장면에 속한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였다. 선제골을 넣었으니 남은 20분 동안 잘 버티면 16강이 눈앞에 다가온 것이다. 16강 진출은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그만큼 분위기는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이스 피구가 있는 포르투갈도 만만치 않았다. 2명이나 퇴장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골문을 노린 것이다. 심지어는 몇 차례의 실점 위기가 발생하기도 했다. 정말 운이 많이 따랐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경기는 90분을 향해하고 결국!!! 월드컵 도전 역사상 처음으로 조 1위 16강 진출의 기염을 토해냈다. 정말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1998년 월드컵 때 네덜란드에게 5:0으로 진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한국 축구사에 다시 볼 수 없는 명경기! 이탈리아와의 16강전
1954년 스위스 월드컵에 첫 출전 후 단 1승도 못했던 대한민국. 그 한풀이라도 하듯 조별 예선에서 2승 1 무의 엄청난 성적으로 16강에 진출한다. 직접 관람을 한 관중부터 TV 시청을 한 시청자들, 언론, 전문가들 모두가 난리가 났다. 예상치 못한 성적을 거둔 한국 대표팀에 사람들은 열광하고 거리로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이제 사람들은 16강을 넘어 한국 대표팀이 어떤 성적을 거두는지가 초미의 관심사였다. 그런데… 하필이면 16강 상대가 월드컵 3회 우승에 빛나는 “이탈리아”였다.
이탈리아는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붙어본 경험이 있고 아쉽게 3:2로 졌지만 워낙 강팀이다 보니 대다수의 사람들의 반응은 “16강으로 만족해야지”라는 것이었다. 그만큼 어느 누구도 이탈리아와의 경기에 승리를 점치는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나마 희망적인 것은 히딩크 감독의 발언이다. 지금도 회자되지만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앞두고 “나는 배고프다.”라는 유명한 발언이었다. 지금까지 행보는 한국 대표팀의 놀라운 모습이었기 때문에 히딩크 감독을 믿어보자~라는 분위기도 있었다.
그렇게 16강 경기의 킥-오프가 시작되었다. 경기 초반이지만 상당히 밀리는 듯한 경기였다. 그런데 이탈리아의 반칙으로 행운의 페널티킥이 선언되었다. 하지만… 안정환의 실축은 선제 득점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아쉽게 날려버렸다.
확실히 이탈리아는 지금까지 상대했던 팀과 다른 팀이었다. 힘과 교묘한 반칙으로 한국 수비들을 농락했는데 전반 7분에 이탈리아 공격수 비에리의 팔꿈치에 맞아 김태영의 코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당했다. 경기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런 중상을 당하고도 경기를 뛴 김태영의 정신력이 놀라울 따름이다.
그렇게 밀리는 경기를 하다가 전반 18분경에 이탈리아의 비에리의 헤딩골로 이탈리아가 선제골을 넣었다. 엎친데 덮친 격이었다. 이탈리아는 워낙 수비가 강한 팀이었기 때문에 1골을 넣고 나서 수비수 교체를 통해 더욱더 골문은 단단치 막는 전략을 취했다.
한국은 파상공세를 취했지만 좀처럼 이탈리아의 골문은 열지 못했다. 그러다 후반이 지나고 후반 중반을 넘어가면서 히딩크 감독은 승부사적인 면모를 발휘했는데 수비수인 김태영을 빼고 공격수인 황선홍을 투입한 것이다. 골을 넣기 위해 과감히 수비수를 빼고 공격수를 투입한 것.
뒤이어 골문이 열리지 않자 공격수인 이천수, 차두리 등을 투입하면서 더욱더 공격적인 전술을 시행한다. 일반 사람들이 보기엔 꽤 위험한 전술인 거 같았지만 히딩크 감독은 과감함을 선택한 듯하다.
그렇게 이탈리아와의 16강 경기가 막바지로 접어들 때쯤… 역시나 한국은 16강이 마지막이구나 라는 생각으로 경기가 끝나가는 것을 아쉬워할 찰나에 종료 2분을 남기고 설기현의 극장골이 터진다.
정말 엄청난 골이었다. 이대로 경기가 끝나는 줄 알고 TV를 끌려고 했던 찰나였다. 골문 앞으로 굴러가던 공을 이탈리아 수비수가 실수하는 바람에 설기현한테 흘러갔고 그걸 바로 때린 볼이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던 것. 엄청난 환호와 함께 분위기가 급 반전한다.
종료 시간은 얼마 안 남았지만 한국은 파상 공격을 한다. 뒤이어 신예 선수인 20대 초반의 차두리의 명품 오버헤드킥은 골이 되지 않았지만 엄청난 슛이었으며 분위기는 한국 쪽으로 흘러간다.
결국 전후반 90분 경기는 1:1 동점이었으며 연장전으로 돌입했다. 이때부터 경기는 연장 대 혈투로 들어간다.
물고 물리는 접전이었지만 선수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그러다 연장 전반에 프리킥을 얻었는데 황선홍의 절묘한 킥이 골문으로 들어갈 뻔했으나 세계적인 골키퍼 부폰이 가까스로 쳐내는 바람에 성공하진 못했다. 그러다 한국에 행운의 상황이 찾아온다.
송종국과 경합하다 한국 페널티 쪽에서 쓰러졌던 토티가 할리우드 액션을 판정받고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던 것. 이 상황으로 공방전이었던 분위기가 한국 쪽으로 오기 시작한다. 그러다 117분경에 이영표의 골 문쪽으로 센터링이 향하는데…
그때 안정환이 솟구치며 헤딩을 하는 순간…. 기가 막히게 이탈리아의 골문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골이었다. 2002년 월드컵 당시에는 골든골 제도가 있었기 때문에 바로 경기가 종료되고 경기는 마무리되었다. 한국이 8강을 진출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2002년 월드컵 전에는 단 1승도 하지 못한 한국. 조별 예선에서 2승 1무를 하더니 16강에서 우승후보였던 이탈리아를 연장 혈투 끝에 기어이 이겨버린 것. 전혀 예상치 못한 경기 결과였다. 그리고 한국 축구의 새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또한 이탈리아와의 16강 경기는 한국 축구에서도 보기 드문 명승부였다고 볼 수 있다. 치열한 공방전이었고 비록 페어플레이는 되지 않던 깔끔하지 못했던 경기이긴 했다. 워낙 반칙과 할리우드 액션이 난무했고 뒷말이 많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탈리아와의 16강전 경기는 선수들의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 히딩크 감독의 엄청난 전술, 관중들의 8강에 대한 염원과 열띤 응원들로 인해 엄청난 결과를 만들어 냈다. 2002년 한국의 경기들 중에서 가장 스펙터클하고 재미있고 명승부를 꼽으라면 아마 16강 이탈리아와의 경기를 꼽고 싶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새 역사. 8강 스페인과의 경기
참으로 놀라운 행보였다. 단 한 번도 16강조차 진출해보지 못했던 한국이 자국에서 개최한 월드컵에서 8강까지 진출한 것이다. 사람들은 거리로 나와 열광했고 히딩크 감독을 보고 “히딩크 매직”을 부린다고 칭송했다. 그만큼 엄청났던 한국 대표팀이었다.
8강 상대는 스페인이었다. 참 일부러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대진운은 지지리도 없었던 거 같다. 토너먼트에 올라갈수록 우승 후보급의 팀들과 붙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지난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2:2로 비긴 좋은 추억이 있었지만 워낙 강팀이고 레일 마드리드와 FC 바르셀로나로 대표되는 막강한 클럽 출신들의 선수들은 한국 선수들에게 위압을 주기 충분했다.
8강 경기가 킥-오프 되자 스페인 위주의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확실히 16강 경기에서 연장 후반까지 경기를 펼치는 바람에 체력이 많이 소진된 듯했다. 몸이 전반적으로 무거워 보였고 공격다운 공격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듯했다.
반면에 스페인의 공격은 매서웠다. 실점 위기를 몇 차례 가까스로 넘겼으며 심지어는 2번 골망을 넘었으나 심판의 판정으로 취소되기도 했다. 오심논란도 있는 상황이 몇차례 되기도 했다. 한국 입장에서는 행운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다소 지루한 공방전이 지속되었고 전후반 90분이 종료되었다. 연장전에 돌입했으나 또다시 지루한 공방전을 이어가면서 120분이 끝이 났다. 16강에 이어서 8강에서도 연장 혈투는 계속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우승 후보 스페인을 상대로 꽤 선전을 했고 승부차기까지 승부를 끌고 온 한국의 정신력은 대단한 듯했다. 특히 승부차기는 강팀이든 약팀이든 간에 누가 이길지 전혀 예측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한국도 이길 수 있는 게임인 것이다. 조마조마하게 승부차기를 지켜보기 시작했다.
한국의 골키퍼는 이운재였고, 스페인의 골키퍼는 당시 신예였던 카시야스다. 카시야스가 누구인가? 레알 마드리드에서 붙박이로 활약하던 레전드 골키퍼이다. 이 둘 간의 승부차기 대결이 시작된 것이다.
첫 키커는 황선홍이었는데 다소 불안했지만 첫 번째 슛을 성공시킨다. 그렇게 양팀다 3번째 키커까지 슛을 성공시키는데… 4번째 한국 선수가 성공을 하고 나서 스페인 선수 차례가 되었다. 그런데 약간 슛을 할 때 멈칫하더니 이운재의 동작에 가로막혀 실패한 것이다.
엄청난 선방이었다. 한국의 승리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 주자인 홍명보가 슛을 성공하면 그 누구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4강 토너먼트에 진출할 수 있는 것이다. 정말 떨리고 초 긴장하는 마음으로 TV를 주시한 순간….
스페인의 골문을 통과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아니 정말 충격적이다 시피 했다. 유럽 강호나 남미 강호들만 진출한다는 월드컵 4강 토너먼트에 축구 변방국 한국이 진출하게 된 역사적 순간이다.
관중석의 관중이나 TV를 지켜보는 사람들, 거리 응원을 했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나 또한 TV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승부차기가 끝나면서 정말 감동의 물결이 오는 듯했다.
그렇게 한국은 “4강 신화”를 써내려 갔다.
독일과의 아쉬운 준결승. 그리고 터키와의 축제의 3/4위전
이제 한국은 “월드컵 우승”이라는 엄청난 목표를 세운다. 히딩크 감독의 말처럼 아직도 배고팠기 때문이다.
독일은 축구에 있어서는 이탈리아와 더불어 세계 최강국이다. 월드컵 우승을 3번이나 했으며 특히 국가대표팀의 경우에는 워낙 강하기 때문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때 독일과의 경기에서 2:3으로 아쉽게 진 역사가 있었지만 그럼에도 독일은 쉽게 넘어설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또한 16강, 8강 경기에서 연장전까지 가는 혈투를 벌인 탓에 선수들의 체력 소모도 심한 편이었다. 8강 스페인과의 경기에서도 보이듯이 전반적으로 몸이 무거워서 공격다운 공격을 해보지 못한 터라 독일과의 경기에서도 제 능력을 잘 발휘할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가 열리자 한국의 경기력은 꽤 괜찮았다. 독일의 골문을 많이 위협하기도 했고, 특히 이천수의 결정적인 슛이 독일 골키퍼 칸에게 가로막힌 것은 꽤나 아쉬웠다.
그렇게 공방이 이어지던 중 75분쯤에 독일의 미드필더 미하엘 발락의 슛이 이운재 골키퍼에 막혔으나 다시 튕겨져 나가서 재차 슛으로 골문을 갈랐다. 독일이 선제골을 넣은 것이다. 하지만 16강 이탈리아와의 추억을 기억하던 사람들은 다시 한번 기적을 기대했지만… 경기는 그대로 1:0으로 끝나고 말았다.
한국의 행보는 여기까지였다. 그리고 너무나 위대하고 감동적이었다. 사실 준결승까지 올라가리라곤 아무도 예상 못했다. 축구 변방국인 한국이 국내 축구팬과 해외 축구팬들의 예상을 깨고 4강까지 진출할 것은 정말 충격적인 사건임에 틀림없었다.
아쉽지만 지금까지 행보도 매우 대단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리고 히딩크 감독의 전술과 용병술이 빛났던 경기들이었던 거 같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경기는 3/4위 결정전인 터키와의 경기. 터키는 다른 유럽의 강호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해볼 만한 상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경기를 해보니 터키도 만만치 않은 경기력을 보여준 팀이었다.
경기 시작 11초 만에 첫 골을 시작으로 전반전에만 3골을 내줬다. 물론 전반에 1골 만회를 하고 후반 말미에 1골을 더 만회해서 2:3으로 경기를 마무리했다. 3/4위 전의 경우에는 이전들의 경기와는 다르게 즐거운 축제 분위기에서 진행이 되었고 비록 2:3으로 졌지만 경기가 끝난 후 선수들끼리 훈훈하게 마무리가 된 듯하다.
2002년 월드컵의 감동.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렇게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의 위대한 여정이 마무리되었다. 월드컵 개최 전에 5:0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히딩크 감독. 그는 특유의 우직함과 고집으로 온갖 비난을 쏟아내던 한국의 팬들과 언론에 맞서서 자신만의 축구를 구축했고 그 결과 한국 대표팀의 월드컵 4강 신화라는 위대한 결과를 만들어 냈다.
이는 히딩크 감독만의 결과가 아닌 선수들의 노력과 땀이 빚어낸 결과였다. 감독이 아무리 명장이고 뛰어나도 선수들이 따라주지 않으면 경기 결과는 결코 좋을 수 없다. 히딩크 감독이 뛰어난 것도 있지만 그걸 잘 따라오고 노력한 선수들이 8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02년 월드컵 이후로 한국 축구는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그 전까지만 해도 해외 축구 클럽으로 진출을 거의 하지 못했던 선수들이 해외 진출 러시가 이어진 것이다.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에 안정환, 박지성, 이영표 등의 스타플레이어를 만들어냈고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이영표는 토트넘 핫스퍼에 진출하여 현재까지 한국 축구의 레전드로 남아있다.
전 국민이 울고 웃었던 2002년 월드컵은 한국 축구 역사에 있어서 길이 빛나는 월드컵이다. 그동안 변방에만 머물러 있던 한국 축구는 2002년을 계기로 세계 무대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는 중이다. 특히 최근에는 2018 러시아 월드컵에서 랭킹 1위 독일을 이기거나 2019 U-20 월드컵에서 준우승을 거두는 등의 미래가 매우 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2002년을 계기로 한국 축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준거 같다. 독일과의 준결승전 때 “꿈은 이루어진다”라는 카드 섹션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월드컵 우승도 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본다.